입구에 써있는 '용문달양'
용문이란 중국 고사에 잉어가 센 물살을 지나면 용이 된다는 것에 유래하여 통영운하를 뜻하는 것으로 통영운하를 지나면
산양(미륵도)에 달한다는 뜻이다.
통영해저터널(동양 최초의 해저터널)
통영운하는 효율적인 어로작업을 위한 항로단축을 위해 1922년부터 논의 되었으나 일본인 거류지역인 통영읍과
어업전진기지로 부상했던 미륵도 지역간의 늘어난 교통수요를 위한 일본인의 편의 시설로 설치되었다.
통영해저터널은 통영운하의 부속사업으로 운하건설 도중인 1931년 7월 26일 착공하여 1932년 11월 20일에 완공되었다.
운하와 해저터널 공사를 주도한 인물은 훗날 통영읍장을 지낸 야마구치로 그는 1876년 일본 기후현 생으로 1906년
조선으로 와 경성에서 활동하다가 1918년부터 통영에 거주하면서 통영 근대사에 이름을 남긴 인물이다. 야마구치는
동래읍장으로도 있었고 금강공원 금강원지에 야마구치가 동래읍장으로 일했던 것을 알 수 있다. 터널의 기본구상과
계획은 통영읍에서 주도하였으나 공사는 경남에 위탁하여 직영으로 추진되었다. 터널의 설계는 당시 상당한 기술
수준으로 토목은 물론 건축에도 지식이 있는 일본 전문가에 의해 설계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통영해저터널은 목조 트러스 지붕의 진입도로, 콘크리트 함형구, 목조 트러스 지붕의 진입도로의 세부분으로
구성되었고 각각의 길이는 90.59m, 302.27m, 90.59m로 실측되어 전체길이 483.45m로 계획안보다 20.95m 늘어난거리이다.
그렇다면 일본이 해저터널을 놓은 이유?
항간에는 일본에 그당시 해저터널을 놓기 위해 시험삼아 먼저 놓은 것이라는 말도 있었으나 그보다는 이곳이 당포전에서
참패를 당한 왜적들이 수장된 곳이라 원래 다리가 있던 곳에 다리를 없애고 수장된 조상의 원혼을 밟고 다니지 말라고
해저터널을 만들었다는 쪽이 일리가 있다.
하지만 현재 우리나라 기술로 지어진 충무교와 통영대교가 완공된이후 관광객을 제외한물류의 통행은 거의 사라졌으며,
조상의 원혼을 건드리지 않기 위해 해저터널까지 생각해낸 일본이나,굳이 그 위를 가로질러충무교를 건설한 우리나라의
역사적 심리전 또한생각하면 재미있다.
일제시대에 이미 해저터널을건설해낸 일본인들의 기술력에 감탄할것인가...
바닷물의 유입을 막기위한 방파제 건설, 거푸집 설치, 콘크리트 타설, 운반, 방파제 철거등의 모든 인적 중노동 등은
강제징용으로 끌려간 우리 선조로부터였다는 점또한 잊지 말아야한다.
여름에는 서늘하고 겨울에는 따뜻한, 이곳 해저터널에서는 으스스한 분위기와 함께
귀신소리가자주 들린다는 도시전설도또한 전해진다.
그렇다면 그것은 과거 바닷속에 수장된 일본인들의 원혼일까,
아니면 강제 노동으로 외로운 삶을 마감했을 우리 선조들의 그것일까.
Anyway.......... R.I.P.... you a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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